韓國語의 豫定된 危機

孫元日

一、問題 : 韓國語 表記法의 正常化

二、硏究의 必要性

1南北韓이 漢字를 쓰지 않고 固有文字 “한글”만 使用한지 50年이 지났다. 는 使用하지 않지만 語彙의 약 70%, 15萬 以上인 漢字는 한글로 덮여서 如前히 쓰이고 있다. 一部 아주 어려운 것을 빼고는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와는 訣別 했어도 漢字(音과 義)와는 訣別하지 못한 것이다. 越南이 로마字로써 漢字語를 保存하고 있는 것처럼 한글로 漢字語를 保存하고 있는 것이다.     

2漢字에는 [字形]이라는 形象, [字音]이라는 聲音, [字義]라는 意義가 반드시 있다. 形象만 보아도 어느 程度의 字義를 알 수 있어 表意文字라고 한다. 表音文字는 하나의 境遇는 勿論 몇 個를 連結한 文字列로도 字義를 推理할 表意的 形象이 없다. 따라서 字形 代身 韓國式 字音인 “한글”로 表記해도 漢字의 字義를 알게 된다는 主張이 헛된 希望이었음이 證明되었다.   

3現在 이 “한글化”가 可能한 사람은 極少數의 專門家다. 이들은 發信할 文章을 漢字로써 構成한 다음 한글로 바꾸어 表現한다. 이를 받아 본 受信者는 本來의 漢字를 推理하는 “脫한글化”를 해야 한다. 그러나 漢字를 배우지 못했으니 不可能하다. 그래서 社會 全體의 意味交信, 意志交換이 안 되거나, 되더라도 曖昧模糊하다. 

4이들 專門家가 몇 年 內 存在하지 않게 된다. 한글로 덮인 漢字/漢字語가 이들과 함께 急激히 사라진다. 그래도 쓰지 않을 수 없는 語彙가 相當히 있을 것인데 이 語彙들은 大端히 不確實하게 流通될 것이다. 一般 知識水準이 生活語 中心인 固有語 水準에서 固定될 것이다. 越南처럼 다시는 漢字 使用國이 되지 못할 것이다. 

550년간 施行한 끝에 文字改革, 文化革命이 表面上 끝나지만 內容으로는 混亂이 繼續 進行된다. 이대로 두면 後孫으로부터 두고두고 怨望을 받을 것이다.

三、意味의 探索

言語硏究는 大體로 發音(音聲學, 音韻論), 文法(形態論, 統語論), 意味(語彙論, 意味論)로 나눈다. ‘下’의 音聲學에서 ‘上’의 意味論으로 올라가는 셈이다. 意味硏究가 높은 評價를 받는 것은 言語의 使命이 [意味의 疏通]이므로 當然하다.  

表音文字는 “音聲”에 對應하나 表意文字는 “意味”에 對應한다. [人間의 知性은 意味의 理解로써 成立된다]는 말처럼 表記法의 優劣은 意味의 理解에 基準을 두어야 한다. 하지만 音聲中心의 歐美 言語學은 表意文字의 表意性을 理解하지 못하고 無視한다. 그런데도 東洋에서 그 理論을 定說로 받아드리니 異常하다. 學問의 普遍性이 歐美에 依하여 掌握된 것은 事實이지만 言語에 있어서는 달라야 할 것이다. 

   1[記號論的 三角形]의 意味

Ogden Richards [The Meaning of Meaning]에서 ‘象徵(言語, 記號), ‘思想 또는 指示(reference)’와 ‘指示物(referent)’의 셋을 각각 頂点으로 한 三角形으로써 意味關係를 說明했다. 象徵(言語, 記號)과 指示物 사이에 直接적인 連結이 있다는 從來의 생각을 否定하고 精神的 作用 즉, ‘思想 또는 指示(槪念, 意味)’를 通하여 間接的으로 關係를 맺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思想 또는 指示’가 무엇인지를 明白히 하지 안 했다. 大槪 어릴 때 無意識的으로 알게 되는 生活語 中心의 固有語 속에는 比較的 槪念化 하기 쉬운 것이 있다. 하지만 다른 抽象語 등 全 語彙에 대하여 分明한 視覺的 이미지로 그려낼 수 있는가? 대단히 어렵다. 또 같은 對象을 놓고 送信者와 受信者가 같은 槪念을 그린다는 保障이 없다.   

2Saussure의 意味

近代 言語學의 基礎를 構築한 그는 意味하는 것(音聲, 聽覺映像, signifiant)과 意味가 주어져 있는 것(槪念, signifie)과의 사이에는 必然的인 關係가 없다는 것을 恣意性이라고 表現했다. 그러면서 一旦 社會的 客觀的 約束, 規範으로 굳어지면 지켜져야 하다고 하였다. 恣意性과 强制性을 兩立 시켰다.

[言語와 書(文字) 2個의 全혀 다른 記號體系다. 後者의 唯一한 存在 理由는 前者를 表記하는 것이다. 言語學의 對象은 쓰여진 語(文字言語)와 말해진 語(音聲言語)와의 結合이다 라고는 定義되지 않는다. 後者만이 그 對象이다.(p.40)]라 했다. 

[言語는 한 장의 종이와 比較할 수 있다. 思想은 表面이고 音은 裏面이다. 裏面을 分斷시키지 않고 表面을 分斷시킬 수는 없다. 이처럼 言語도 音을 思想에서 떼어내는 것도, 思想을 音에서 떼어내는 것도 할 수 없다. 萬若 된다면 그것은 抽象作用에 依할 뿐이다. 그 結果는 純粹心理學이나 純粹音聲學에서 할 일이 될 것이다.(p.158)]라고 했다. 意味가 音聲에 物理的으로 붙어 있다는 것이다.  

 [送信者 A의 腦가 그 속에 있는 槪念과 聽覺映像을 連合하여 發聲器官에 對하여 音波를 보내게 한다. 이 純粹한 物理的 音波가 受信者 B의 귀에 到達하고, 腦로 가고, 腦 속에서 이 ‘映像과 이에 對應하는 槪念과의 心的 聯合’을 한다. 그런 다음 이번에는 受信者 B가 送信者가 遂行한 過程을 正反對로 밟아서 送信者 A에게 보낸다. 이와 같이 送信者 A의 腦에서 일어난 映像과 槪念이 受信者 B에게 그대로 옮겨지고 또 다시 그 正反對가 履行된다.(p.24)]라고 했다.

이처럼 聽覺映像 外에 視覺映像이 있어 서로 密接하게 連繫하고 있는 事實과 文字의 存在를 모두 無視하였다. 意味를 音聲에 物理的으로 붙어 다닌다, 聽覺映像만 言語다 라고 主張하였다. 모두 基本的인 錯誤다. 

3Bloomfield의 意味

言語硏究를 科學化하였고 美國의 行動主義言語學의 代表格인 그의 意味에 대한 定義는 [‘話者의 立場, 狀況’━━> ‘語’ ━━>’聽者의 反應’]이다. 여기서 意味는 話者의 ‘語’ 속에 있는데 그것을 客觀的인 무엇이라고 說明하지 못한다. 그러니 [話者가 말하기 以前의 立場, 狀況과 聽者의 反應(行動)으로 설명될 수 밖에 없다. 이 둘을 調査하면 言語의 意味가 밝혀진다]고 했다. 果然 그럴까?

이것은 極히 簡單한 境遇에도 成功하기 어려운 處方이다. 言語가 發生되는 前後 事情은 千差萬別이고 모든 世界事情이 關聯되어 있다. 또 모든 情報를 다 안다는 것은 不可能하다. 設或 그러한 情報를 다 가졌다 해서 意味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言語는 늘 새로운 意味를 만들기도 하고 새로운 世界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는 [意味에 普遍性이 있고, 人間은 科學的으로 共通된 行動을 한다, 따라서 意味가 刺戟과 反應으로 생기는 단 하나의 樣式(pattern)이다]라는 前提를 했다. 그러나 自然科學的 嚴密性을 追求한 것 같이 보이지만 言語는 結局 自然科學的 原理와는 別途라는 것을 보여주고, 意味 解析에 아무런 寄與를 하지 못했다.   

4Chomsky의 意味

그는 傳統的인 言語觀에 “革命的인 變革”을 했고, 問題를 “天才的”으로 풀었다고 한다. 그러나 英語 外 다른 言語를 無視하였다. [論理()는 人類의 普遍이며 모든 言語에 共通된 深層構造다. 世界 各 言語의 文法은 深層構造가 각각 다른 形態로 나타난 것이다, 表現이 달라도 뿌리에서는 連結되어 있다]고 하였다. 

“擴大標準理論”에서 深層構造 뿐 아니라 表層構造도 意味表示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意味解析規則은 勿論 意味表示 自體에 對한 納得할만한 說明이 없다. 

    全體的으로 各 文에 意味와 音聲을 指定하는 文法이 있고, “言語記號는 音聲과 意味로 成立되었다”는 点과 文字를 完全 無視한 점에서 Saussure 以來의 傳統을 따랐다. 또한 文法構造가 先天的이며 純粹한 頭腦의 産物이라는 데서 出發하였으나 腦 속의 意味가 現實 世界에서 어떻게 具體化 된다는 것을 說明하지 안 했다.

5찾지 못한 意味

以上 모두 “意味찾기”에 失敗했다. ‘家’, ‘冊床’ 등 直接 보고 알 수 있는 指示對象이라도 嚴密히 보면 送信者가 생각한 것과 같은 것을 受信者가 안다는 保障이 없다. 그러므로 巨大, 極小, 超感覺的 世界에서는 意味가 늘 不確實하다. 여기서 漢字의 共通性 表意性이 돋보인다. 漢字는 簡單한 意味가 基本義(共通義)로서 먼저 直觀的으로 確立된다. 이것을 벽돌로 하여 複雜한 意味를 쌓아 올린다. 

四、言語의 送受信 基本모델

言語의 構造와 機能을 意味의 觀点에서 “認識, 記憶, 表現”의 3段階로 壓縮해 보겠다. 3段階는 送信者(發信者), 受信者(理解者)에 모두 適用된다.  

1認識

表音文字로의 轉換은 이 轉換을 單純하게 생각한 데서 비롯되었다. [韓國語는 그대로 있고 이를 表現하는 文字가 바뀔 뿐이다. 意味疏通에 支障이 없다]고 한다. 文字의 減縮은 生活의 모든 面을 減縮하고 社會 全體의 發展을 막는다.    

轉換을 推進한 사람들은 [어려운 漢字를 없애고 表音文字만 쓰게 하면 文盲者가 없어진다. 그래야 近代化가 된다]고 主張했다. 目標 水準이 生活에 必要한 母國語를 理解할 수 있는 “實用的 理解”에 두었다. 그러나 이 目標는 初等敎育을 義務的으로 받게 하는 것 만으로 充分히 達成되었다. 漢字를 없앨 必要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專門的 理解”를 위한 自立的 學習의 길을 막는 결과가 되었다. 

言語能力은 適切한 刺戟과 經驗을 해야 제대로 發現되는 能力이다. 知識을 쌓아 올려서 利用해야 늘어나는 能力이다. 어릴 때에 無意識的으로 익힌 水準에서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계속해서 多樣하고 尨大한 知識을 習得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도 初等敎育에서 基礎漢字를 배우지 못하게 하였으니 앞길이 막한 것이다.

社會가 複雜해지고 業務領域이 細分化 됨에 따라 隣接 分野 사이의 專門用語 交換이 切實히 必要하다. 이 需要를 固有語가 다 供給할 수 없다.   

   漢字를 使用해야 할 더 根本的인 理由는 言語의 分節性을 살리는 데 있다. 言語의 分節機能은 文章을 여러 個 單語로써 構成함으로써 無限히 多樣한 意味를 表現할 수 있게 한다. 漢字는 各各 “意味의 벽돌”이 되어 이 分節性을 最大化한다.      

現有 漢字 總數 7萬의 約 90%가 形聲文字다. 性格ᆞ 性質 등의 意味를 나타내는 “意符”와 發音을 나타내는 “音符”로 成立되었다. 部首와 基礎漢字가 역시 意味의 벽돌이 된다. 音符를 로마字 알파벳이라 보아도 無妨하다. 또 音符에도 각각 獨自的 意味가 들어 있다. 發音이 같거나 아주 닮은 漢字의 그룹에 반드시 共通되는 家族的 意味가 있다. 그러므로 形聲文字를 [表意表音文字]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表音文字로의 改革은 20世紀 初에 擡頭되었다. [東洋의 最大改革은 言語의 改革], [言語改革의 形式은 民族主義, 內容은 社會主義], [文字改革은 世界普遍의 表音文字로] 등이다. 當時의 좁고 낮은 言語觀에 基礎를 둔 이 目標가 아직도 健在하니 異常하다. 情報科學, 腦科學, 生命科學 등과 連繫하여 再定立되어야 할 것이다.  

2記憶

모든 생각, 判斷은 理解가 된 意味의 記憶을 基礎로 한다. 大腦의 言語中樞에

意味의 記憶이 많을수록 좋은 생각, 判斷을 期待할 수 있다. 記憶 負擔을 가볍게 해야 創造的 活動을 할 수 있다든가, 어려운 漢字 工夫를 시키면 다른 공부를 못하게 된다는 主張은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發展의 抛棄 論理다. 

컴퓨터가 尨大한 情報를 記憶하지만 電子의 貯藏이지 意味의 記憶은 아니다. 다시 말해 言語活動이 아니다. 컴퓨터가 言語活動을 하려면 意味交流를 해야 한다. 이것은 腦의 限界를 넘는 일이니 實現이 不可能할 것이다.  

記憶은 크게 長期記憶과 短期記憶(作業記憶)의 둘로 나눈다. 長期記憶은 手續的記憶, 意味(知的)記憶, 에피소드(生活)記憶의 셋으로 分類된다. 手續的記憶은 自轉車 타기와 같이 몸으로 記憶하는 것이다. 에피소드(生活)記憶은 時間과 空間的으로 일어난 事件, 狀況과 連結된 記憶이다. 意味(知的)記憶은 知識과 槪念의 記憶이다. 새로운 知識을 만나서 理解하고 永久記憶으로 남게 하는 것이다.

記憶의 入力活動은 主로 左腦의 前頭 前野이고 그 出力活動(想起, 再生)은 右腦의 前頭前野이다. 言語記憶 本體의 保存場所(buffer)는 左腦의 後頭頂葉이다.

그런데 우리의 主 關心事인 表音文字와 表意文字의 記憶保存 位置는 같은 後頭頂葉이기는 하지만 若干 다른 곳이다. 表音文字(英字, 한글)는 角回, 表意文字(漢字)는 그 下位 若干 떨어진 場所이다. 그러니까 表意文字 때문에 表音文字의 記憶, 따라서 學習이 妨害를 받는다는 從前의 主張은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또 表音文字와 表意文字의 學習經路가 서로 다르고, 腦의 記憶은 各種 辭書形態로 되어 있는데 表意文字 辭書와 表音文字 辭書가 別個로 있으며 意味辭書와 密接하게 連繫하고 있다고 한다.  

固有語는 大槪 生活語(機能語), 漢字語는 專門語(內容語). 知識社會, 高齡化社會에서는 固有語의 需要는 別로 增加하지 않으나 漢字語의 需要가 急增한다. 知識生産의 比重이 壓倒的으로 커지므로 누구나 더 많은 學習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韓國의 漢字/漢字語는 많은 点에서 現在의 中國과 日本의 것과 다르다. 字形도 若干 다르고, 字義가 많이 다르고, 字音은 거의 全部가 다르다. 따라서 유니코드(ISO 10646)에서는 같은 字形인데도 國家/地域 別로 다른 文字符號를 붙이고 있다.  

言語와 文字의 基礎는 8歲 以前, 늦어도 12歲 以前에 굳어진다. 이 貴重한 時期를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假想現實에 빠질 時間을 주기 위하여 基礎漢字를 배우지 못하게 하는 사람이 眞正한 敎育者, 指導者일 수 없다.

3表現

 言語의 表現은 形式으로서 音聲, 文字, 몸짓(體態)의 셋, 內容은 意味다. 分類를 하자면 [音聲 + 意味 = 音聲言語], [文字 + 意味 = 文字言語], [몸짓(體態) + 意味 = 手話]가 된다. 受信者가 意味를 理解하면 言語이고, 理解하지 않으면 言語가 아니다. 이 셋 中 人類의 文明과 文化를 創造ᆞ 發展시킨 文字言語가 가장 重要하다.   

(1)形式 

表現의 形式은 音聲, 文字, 몸짓(體態)의 셋이다. 意思의 客觀的 表現이다. 送信者는 受信者가 가장 理解하기 쉬운 形式을 構成하여 보내야 한다. 그러자면 漢字語는 本來의 漢字로 表現해야 한다. 文字의 形態가 簡單할수록 意味傳達과 記憶이 잘 된다는 主張은 헛말이다. 알파벳 26가 簡單하다고 해서 英語가 쉬울 理 없지 않는가? 한글로의 音寫(音譯?)가 原音보다 意味를 더 잘 傳達한다는 말도 우습다. 外來 專門語의 飜譯은 漢字語가 迅速하고 效率的인 意味 把握을 할 수 있게 한다.       

文字의 優劣은 形態와 數에 있지 않다. 그것으로 生成한 語彙의 多樣性과 意味傳達의 效率性에 있다. 先進國의 大學生 平均 語彙가 約 5萬이라고 한다. 이 水準으로 빨리 올려야 한다. 인터넷, 電子通信 등의 內容(contents)에 漢字/漢字語가 全혀 使用하지 않고 있다. 처진 隔差를 따라잡기는커녕 더 벌어질 것이다.  

人間의 發聲 및 聽音이 限界点에 가깝다. 더 이상 擴大하기 어렵다. 이를 表音文字로써 表現하는 것도 勿論 限界点에 가깝다. 이에 比하여 表意文字의 造語能力과 辨別力에는 制限이 없다. 急增하는 同音異義語를 充分히 辨別할 수 있게 한다. 情報의 爆發的 增加에 따른 處理能力 面에서 決定的인 差異가 여기에 있다.   

(2)意味 

言語의 內容인 意味를 漢字가 卽刻 提示할 수는 없다. 言語에 依한 世界 認識은 非 言語的 世界 認識과 더불어 하는, 腦의 全 機能을 動員하는 것으로서 大端히 複雜하고 어렵다. 어느 個別的인 語彙를 順次的으로 處理하여 最終的으로 全體의 狀況, 意味를 理解하는 一貫 生産方式이 아니다. 漢字라고 해서 意味 理解의 解決士 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漢字/漢字語는 하나하나가 數 千 年의 生死病老的인 歷史를 안고 쓰여지고 있는 唯一한 表意文字다. 앞서 말한 여러 가지 利點을 繼續 充分히 發揮할 것이다. 이런 前提 아래 다음을 强調하고 싶다. 

첫째, 意味는 送信者의 머리 속에 觀念으로서 그대로 남아 있다. 文字로 표현하기는 하지만 言語規範에 맞고 人事말처럼 單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意味가 그대로 통하지 않는 것이 當然하다.

둘째, 意味는 結局 受信者의 認識能力에 달렸다. 受信者가 모두 漢字를 모르는 狀態인데 漢字語를 한글로 덮어서 보내고 意味가 傳達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努力의 浪費이며 混亂의 原因이 된다.  

셋째, 認識과 記憶은 全的으로 腦가 하는 主觀的 活動이며 表現도 腦가 主役이다. 音聲과 文字는 그 主觀的 活動結果를 腦가 客觀化한 것이다. 그러나 이 客觀化에는 意味가 包含되지 않는다.

넷째, 意味를 曖昧模糊하게 주고 받는 것을 放置하면 文化의 沒落으로 이어진다. 國民의 認識, 記憶, 表現 등의 諸能力을 減退 시키는 文字改革은 愚民化로 通하는, 해서는 안 될 改革이다.

五、結論 : 韓國語表記 正常化의 길

“文字改革”, “文化革命” 50, 엄청난 損失을 내고 조용히 幕을 내리고 있다. 破壞가 천천히 소리 없이 進行되니 韓國語와 文化의 危機를 皮膚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大失敗를 正反對로 大成功이라고 하는 無責任한 言說이 如前히 있는 판이다. 汚職은 一部를 暫時 亡치게 하나 잘못된 正義는 全部를 永遠히 亡치게 한다는 그 말이 옳다. 잘못된 正義에 대하여 다시 한번 다음을 呼訴한다.  

1[文字의 存在 價値 自體를 無視하거나 認定하더라도 文字는 音聲을 적기만 하는 것이다, 意味는 音聲과 物理的으로 結合되어 있다]는 등의 歐美 言語理論을 盲從하지 말며 歐美語를 世界 普遍言語로 斷定하지 말 것. 

2漢字의 形, , 義의 3要素 中 音만 한글로 덮어도 形과 義를 다 알고 利用할 수 있다는 錯覺에서 깨어나고 學習의 길을 더 以上 强制로 막지 말 것. 學習은 責任을 질 수 없는 政府가 아니라 各自가 自己 責任 下에 하는 것이 最上이다. 

3爆發하듯 增加하는 情報에 대한 意味處理 手段으로서 漢字/漢字語의 有用함을 認識하고 言語體系를 高度化, 多樣化, 效率化, 正常化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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